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누가복음 7:41-43

 

탕감을 많이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더이상  부러운 것이 없습니다.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죽을 상황에서 살려준 은혜가 너무 고맙기에

탕감해 준 사람에게 무엇이라도 해 드리려고 할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아버지 일을 이룰까 그 생각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가지 환경을 통하여 우리를 만들어 가십니다.

원래부터 쓰임 받기 적당한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만들어 지기 싫어도

하나님께서 안 만들어지면 안되게끔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입맛에 맞는, 아버지의 마음에 맞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계획하신 대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끌려가기만 하면 됩니다. 주님이 앞에 가시고 우리는 뒤따라가면

역사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 10:34-40

 

하나님은 사랑을 명령하셨습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오히려 내가 싸움을 붙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합당치 않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합당치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부모의 말에 순종하면 가정에 평화가 있고 불화가 생길 일도 없는데

예수님은 반대로 불화하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고

의인을 영접하면 의인의 상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의인을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부모보다 자식보다도 먼저는 의인의 말에 순종하고

그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의로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그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의 말을 듣고 그 후손이 되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사모했던 기생 라합이 의의 족보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녀를 통해 다윗이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시면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야곱도 그 형 에서와 싸우고

요셉도 그 형제들과 원만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결국에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습니다.

부모 형제와 다툼이 있고 불화가 생기는 상황이더라도

하나님께서 싸우라고 할 때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면 그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누구의 말을 먼저 듣느냐.  이것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원치 않는 상황과 환경을 통해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

그 시험을 통해 하나님께서 사용하기에 합당한 의의 일군으로 만들어 가실 때

다른 세상의 목소리에 귀기울이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따라가는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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